6/14/2026

끝까지 만드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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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I 스타트업 이야기를 보다 보면 비슷한 단어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에이전트, 자동화, 노코드, 워크플로우, 생산성, AI 네이티브 등... 결국 “AI로 일을 자동화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Gumloop의 Max Brodeur-Urbas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AI가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AI가 대단하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에이전트를 만들면 실제 업무에서는 잘 안 돌아간다는 쪽이다.

처음 Gumloop도 에이전트에서 출발했다. AutoGPT가 한창 뜨던 시기에 사람들은 “이제 AI가 알아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만들고, 실행까지 하겠구나”라고 기대했다. 말 그대로 ChatGPT를 루프에 태우는 상상이었다. 목표만 던지면 AI가 알아서 다음 행동을 정하고, 필요한 작업을 수행하고, 결과까지 만들어주는 것. 당시에는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한 자율성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내 일을 예측 가능하게 줄여주는 것”이었다. AI가 멋대로 똑똑한 척하며 빙빙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반복해서 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처리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에이전트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이는 에이전트가 업무 자동화의 답이 아니라는 뜻에 가깝다. 사람들은 마법 같은 AI보다 신뢰할 수 있는 자동화를 원했다. 업무에서는 “가끔 천재적인 결과”보다 “항상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꽤 중요하다. 많은 기업들이 AI를 도입할 때 거창한 그림부터 그린다. 전사 AI 전환, AI 에이전트 조직, 업무 자동화 플랫폼, 생산성 10배 같은 말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현장으로 내려가면 문제는 훨씬 작고 구체적이다. 메일을 읽고 분류해야 한다. 고객 문의를 정리해야 한다. CRM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회의 전에 자료를 모아야 한다. 데이터를 모아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매일 손으로 하고 있는 작고 반복적인 일들이다.

AI 전환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전략 보고서가 아니라 지루하고 귀찮고 반복적인 일을 줄이는 것. Gumloop가 강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회사는 “모두가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다”는 말보다, “업무를 이해하는 사람이 직접 자동화를 만들 수 있다”는 쪽에 비중을 두고 문제를 풀고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Gumloop은 Zapier나 Make 같은 자동화 도구와 닮아 있다. 여러 앱을 연결하고, 조건을 만들고, 데이터를 옮기고, 결과를 생성한다. 하지만 차이점은 A앱에서 B앱으로 데이터를 넘기는 자동화가 아니라, 중간에 LLM이 판단하고 요약하고 분류하고 생성하는 흐름을 만든다. 그래서 기존 자동화 도구보다 더 유연하고, 일반 챗봇보다 더 업무에 적합하다.

특이한 것은 Gumloop를 특정 업무용 SaaS라기보다 Python 같은 도구에 비유한다는 점이다. Python은 특정 문제 하나를 푸는 제품이 아니다. 데이터를 다루든, 웹을 긁든, 자동화를 하든, 분석을 하든, 사용자가 자기 문제에 맞게 조합해서 쓴다. Gumloop도 비슷한 포지션을 노리는 듯하다. “이 문제는 우리가 미리 만들어둔 기능으로 해결하세요”가 아니라, “당신의 업무를 당신 방식대로 자동화하세요”라고 말한다.

이런 접근은 기업 입장에서 꽤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기업의 진짜 업무는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같은 영업팀이라도 회사마다 CRM 쓰는 방식이 다르고, 같은 고객지원팀이라도 문의 처리 기준이 다르다. 리테일, 금융, 제조, 커머스, SaaS 모두 프로세스가 다르다. 결국 범용 제품 하나로 모든 업무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업무 담당자가 직접 자동화 흐름을 만들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사용자가 직접 만든 자동화가 많아지면 통제 문제가 생긴다. 데이터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AI 모델이 어떤 정보를 봤는지, 누가 어떤 작업을 실행했는지 관리해야 한다. AI가 기업 안으로 들어갈수록 보안과 감사는 더 중요해진다. Gumloop가 Gumstack 같은 보안, 관측 제품을 같이 이야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AI 자동화가 장난감에서 인프라가 되는 순간, 기업은 “잘 된다”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안전하게 잘 된다”가 필요하다.

그는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Zapier가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OpenAI가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Anthropic이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형 SaaS 기업들이 기능으로 넣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사실 이 질문은 모든 스타트업이 듣는다. 특히 AI 스타트업은 더 심하게 듣는다. 모델 회사가 다 먹을 것 같고, 기존 플랫폼이 기능을 붙이면 끝날 것 같고, 오픈소스가 금방 따라올 것 같다. 그래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할 이유가 너무 많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의 답은 단순하다. 그런 질문에 너무 집착하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업에는 안 될 이유가 백 개쯤 있다. 대기업이 할 수 있고, 경쟁자가 많고, 기술 장벽이 낮아 보이고, 시장이 아직 작아 보이고, 고객이 돈을 안 낼 수도 있다. 그 이유를 다 따지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낙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걱정의 방향이다. “누가 따라 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 대신, “오늘 고객이 겪는 문제를 내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풀 수 있는가?”로 질문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무기는 완벽한 해자가 아니라 속도와 집착일 때가 많다. 특히 시장이 막 열리는 구간에서는 더 그렇다.

Gumloop의 성장은 이 관점에서 볼 때 의미가 있다. 단순히 투자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Benchmark가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AI 자동화 시장의 한복판에서 어떤 사용자의 불편을 해소하느냐이다. “AI를 쓰고 싶지만 코드는 못 짠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싶지만 기존 자동화 도구는 너무 딱딱하다”, “챗봇은 신기하지만 실제 프로세스에 넣기 어렵다”등의 문제다.

이 문제는 한국 기업에도 있다. 많은 회사들이 AI를 도입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은 여전히 엑셀, 메일, 메신저, 수작업 보고, 시스템 간 연동으로 돌아간다. AI PoC는 많지만 운영 프로세스로 들어가는 경우는 적다. 데모에서는 멋진데, 현업의 하루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래서 Gumloop 이야기는 단순한 해외 스타트업 성공담이 아니라, AX를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AI 전환은 모델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업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설계는 중앙 조직만으로는 어렵다. 현업이 자기 일을 가장 잘 안다. 결국 현업이 만들 수 있어야 하고, IT는 그것이 안전하게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AI 네이티브 조직”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AI 네이티브는 직원 모두에게 챗GPT 계정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보고서 초안을 AI로 쓰는 것도 시작일 뿐이다. 진짜 AI 네이티브는 반복 업무가 발견되면 그것을 자동화가 가능한 흐름으로 바꾸고, 그 흐름이 팀 안에서 공유되고, 개선되고, 안전하게 운영되는 조직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질문이 바뀐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반복해서 낭비하는 일은 무엇인가?”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된다. “어떤 모델이 제일 좋은가?”보다 “이 업무에는 어떤 수준의 판단과 검증이 필요한가?”가 중요하다. “에이전트를 몇 개 만들었는가?”보다 “실제 사람이 덜 하게 된 일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그의 조언이 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그는 AI를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위에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완전 자율 에이전트의 환상보다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자동화의 효용을 본다. 이것이 기업이 AI를 적용할때 현실적인 방향일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가장 멋진 데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객의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데서 나온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큰 비전보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작은 반복 업무를 없애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그 작은 자동화들이 쌓이면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바뀐다.

Gumloop의 이야기는 기술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태도의 이야기다. 안 될 이유를 찾는 것은 쉽다. 대기업이 할 것 같고, 모델 회사가 먹을 것 같고, 기존 자동화 도구가 버티고 있고 시장이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시장이 흔들리는 순간에는 그런 이유들 사이에도 틈이 생긴다. 그 틈을 파고드는 사람들은 보통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서 고객 문제를 보고 계속 고치는 사람들이다.

AI 시대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같다. 많이 아는 것보다 빨리 배우는 것, 크게 말하는 것보다 작게 만들어보는 것, 완벽한 성공을 상상하는 것보다 오늘 고객이 쓰는 제품을 개선하는 것이다.

OpenAI, Anthropic, Zapier, n8n, Make 같은 플레이어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회사가 던지는 질문은 현실적이다.

"AI를 도입한다고 말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자동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자동화는 정말 사람의 일을 줄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거창한 AI 전략도 결국 발표 자료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AI 시대에 진짜 중요한 것은 끝까지 만드는 태도다.

✍ Written with Mark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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