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2026

Unlearning - 배운 것 중 필요없는 것을 버리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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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지식, 경험, 확신을 계속 쌓아왔다. 더 많이 알고, 더 정교한 프레임을 갖고, 더 많은 경험을 쌓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동안 역사에서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산업화 시대에도 그랬고, 디지털 전환 초반에도 그랬다. 문제는 지금이다. 지금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계속 붙잡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멀리 간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보다, 한때 나를 성공시켰던 방식을 내려놓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경영학에서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다뤄온 개념이 바로 organizational unlearning이다. 고전적으로는 Hedberg가 조직이 학습할 뿐 아니라 “기존의 이해와 방식을 벗어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후 연구들은 이를 조직 변화의 핵심 주제로 확장해 왔다.

대부분 unlearning을 “잊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대체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최근 리뷰들은 unlearning을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지식/루틴/기억 구조를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거나 버리는 과정으로 정리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냥 시간이 흘러서 잊어버리는 것은 forgetting에 가깝다. 하지만 “이 방식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기존의 신념, 관행, 규칙, 평가기준을 흔들고 재배치하는 것은 unlearning에 가깝다. 

다시 말해 unlearning은 기억의 자연 소멸이 아니라, 판단 체계의 의도적 수정이다. 그래서 이 개념은 개인보다도 조직 변화, 혁신, 전략 전환, 리더십, 팀 실험과 더 자주 연결된다.

이 지점에서 Chris Argyris의 double-loop learning은 여전히 유효하다. Argyris는 조직이 오류를 수정하는 데에도 두 단계가 있다고 봤다.

하나는 기존 목표와 규칙을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오차를 고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그 목표와 규칙 자체, 즉 “governing variables”를 다시 묻는 방식이고, 이것이 double-loop learning이다.

이 개념은 unlearning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실제 조직에서 unlearning이 일어나는 방식과 깊게 닿아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운영 변수와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학습은 대부분 낡은 프레임 안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결국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일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지금의 기준이 여전히 맞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래서 unlearning은 학습의 반대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대로 배우기 위해 필요한 해체 과정에 가깝다. 조직은 흔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새로운 도구를 교육하고, 새로운 KPI를 붙이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새 제도가 들어와도 사람들은 예전 방식으로 해석하고 예전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AI를 도입해도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승인 체계는 그대로 남고, 보고 방식도 달라지지 않는다. 클라우드로 옮겨도 온프레미스 시절의 의사결정 속도와 통제 습관이 그대로면 혁신은 지연된다. 애자일을 선언해도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평가 체계가 유지되면 팀은 더 자주 회의할 뿐 덜 실험하지는 않는다. 최근 연구들이 unlearning을 개인, 팀, 조직의 여러 수준에서 동시에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왜 지금 unlearning이 중요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환경 변화의 속도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번 익힌 지식의 유효기간이 꽤 길었다. 제품 사이클도 길었고, 조직 구조도 비교적 천천히 변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 기술, 규제, 고객 기대가 동시에 빠르게 바뀐다.

최근 리뷰들은 조직 기억이 개인 기억, 팀 기억, 루틴과 관행, 디지털 저장소까지 여러 레이어위에 저장된다고 설명하는데, 문제는 이 기억 구조가 환경 변화보다 느리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조직은 늘 이미 지나간 현실에 맞춰 최적화되어 있기 쉽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추가 학습보다 현재를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기억 구조를 약화시키는 일이다.

둘째는 AI 시대의 아이러니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AI 시대를 “배움이 쉬워진 시대”로 말한다. 분명 맞는 말이다. 정보 접근 비용은 낮아졌고, 코드 작성, 문서 초안, 자료 조사, 번역, 요약 같은 지식노동의 진입장벽은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새로 배우느냐보다 어떤 프레임으로 질문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기존 방식대로 질문하면 기존 방식대로 답을 얻는다. 기존 조직 논리 안에서 AI를 배치하면 AI는 혁신 엔진이 아니라 자동화된 보조 인력으로 축소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AI를 배우자”라는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일을 정의하는 방식부터 다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은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unlearning의 문제다.

unlearning이 어려운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오래 써온 개념, 익숙한 루틴, 성과를 냈던 프레임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unlearning은 정보 업데이트보다 훨씬 불편한 경험이다.

둘째, 조직 차원에서는 성과평가와 보고체계가 이를 더 어렵게 만든다. 조직은 예측 가능성과 반복 가능성을 좋아한다. 반면 unlearning은 대체로 불확실성과 실험, 일시적 혼란을 수반한다.

셋째, 성공 경험이 강할수록 더 버리기 어렵다. 실패한 방식은 쉽게 버릴 수 있지만, 성공한 방식은 마지막까지 남는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위기 때보다 호황기 말기에 더 취약하다.

unlearning은 종종 도전(challenge)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challenge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지금의 질서, 지금의 설명, 지금의 성공 공식을 다시 질문하는 과정이다. 무엇이 당연한가를 묻는 순간, 조직은 비로소 현재를 현재의 언어로 보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unlearning이 완성되지 않는다. 기준, 프로세스, 루틴, 자원 배분, 승인 구조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무에서 unlearning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나는 이것을 세 단계로 설명하는 편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

첫 번째는 인식이다. 지금의 문제가 실행력 부족인지, 아니면 전제 자체가 낡았는지 구분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은 낡은 프레임의 문제를 실행의 문제로 오해한다. 고객 반응이 달라졌는데 메시지의 빈도를 높이거나, 제품 구조가 바뀌었는데 보고 횟수를 늘리거나, 전략의 전환이 필요한데 예전 KPI를 더 엄격히 적용한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가?”

두 번째는 분리다. 낡은 지식이 사람의 능력 부족 때문인지, 루틴 때문인지, 제도 때문인지 떼어서 봐야 한다. 조직 기억은 개인 기억만이 아니라 팀 기억, 루틴과 관행, 디지털 저장소에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unlearning은 교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었는데 회의체가 안 바뀌면 예전 방식이 돌아오고, 프로세스가 바뀌었는데 데이터 정의가 안 바뀌면 같은 판단이 반복된다. 시스템 차원에서 무엇이 기존 질서를 지탱하는지 분리해 보지 않으면, 조직은 늘 “새로운 언어로 옛날 일”을 하게 된다.

세 번째는 대체다. 버리는 것만으로는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기존 신념과 관행을 제거한 자리에 새로운 해석과 루틴이 들어와야 한다. 새로운 제도가 실제로 반복되고 저장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결국 조직은 기억하는 방식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unlearning을 정말 쓰고 싶다면, 막연히 “과거를 버려야 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약화되었는지?, 무엇이 대체되었는지?, 그 변화가 실제 루틴과 의사결정에 어떻게 남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unlearning은 그냥 멋있는 단어에 그친다.

실무에서 unlearning을 판단하는 가장 현실적인 기준은 이것이다.

  • 새로운 도구를 도입했는가? 가 아니라, 옛 판단 기준이 약해졌는가?
  • 새로운 조직도를 만들었는가? 가 아니라, 예전 승인 구조가 실제로 덜 중요해졌는가?
  • AI를 붙였는가? 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의 경계가 다시 그어졌는가?
  • 데이터를 쌓았는가? 가 아니라, 직관이 아니라 실험으로 결론 내리는 비율이 높아졌는가?

이 질문들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unlearning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unlearning을 혁신의 부속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혁신의 앞단에 놓인 조건이라고 본다. 많은 조직이 transformation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운영 모델을 조금 더 디지털화하는 데 그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습은 했지만 unlearning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권한 구조, 성공 공식, 리스크 정의, 고객 이해 방식이 그대로면 혁신은 반드시 기존 질서의 범위 안으로 흡수된다.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것을 의심할 준비”다. unlearning은 개인의 태도 변화로 끝나지 않고, 전략적 유연성, 혁신, 조직 성과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효과는 언제나 맥락과 구조를 탄다.

결국 unlearning은 많이 배운 사람에게 더 어려운 일이다. 많이 아는 사람은 더 많은 설명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정당화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배움의 총량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변화에 강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반대다. 진짜 유연한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이 언제 낡아지는지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시스템을 가진 조직이 강한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 아는 조직이 강하다.

지금 시대에 learning은 기본 역량이 되었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도구도 많고, 접근도 빠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다음이다. 무엇을 더 추가하느냐보다, 무엇을 계속 들고 가지 않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앞으로의 경쟁력은 지식의 축적량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본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래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우리는 계속 배우고 있다. 문제는, 무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가다." 


Refercences:

  • Bo Hedberg, How Organizations Learn and Unlearn (1981). (Semantic Scholar)
  • Chris Argyris, Double-Loop Learning in Organizations (1977). (Antonie van Nistelrooij)
  • Adrian Klammer et al., Organizational unlearning as a process: What we know, what we don’t know, what we should know (2024). (ResearchGate)
  • Samuele Maccioni et al., Navigating the unlearning landscape: an organizational unlearning taxonomy and an outcome-centric model (2024). (Emerald)
  • Annette Kluge, Recent findings on organizational unlearning and intentional forgetting research (2019–2022) (2023). (Frontiers)
  • Adrian Klammer & Stefan Gueldenberg, Unlearning and forgetting in organizations: a systematic review of literature (2019). (Emerald)
  • John Howells & Joachim Scholderer, Forget unlearning? (2016). (Sage 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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