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2025

실리콘밸리가 말하는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의 종말과 진실

2025년 현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발자를 모셔가기 위해 사이닝 보너스와 최고의 복지를 내세우던 “채용 전쟁”은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경기가 안 좋아서”라고 막연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읽게된 글에서 본 실리콘밸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은 이것이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우리가 믿어왔던 “경영의 표준”이 완전히 바뀌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우버(Uber)와 스트라이프(Stripe)를 거쳐 현재 Imprint의 CTO로 있는 윌 라슨(Will Larson)은 “우리가 알던 좋은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는 사실 일시적인 유행이었다고 언급합니다.

도대체 “좋은 관리”가 유행이었다니 무슨 뜻일까요? 사람을 존중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요? 이 글은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거품이 꺼진 시대에 IT 조직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해봅니다.


왜 “착한 관리자”에 열광했나?

2010년 부터 2021년까지의 시기는 “제로 금리”의 시기 입니다. 시장에 돈이 넘쳐났고, 투자자들은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의 성장에 베팅했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얼마나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용자와 개발자를 보유했느냐”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희소하고 비싼 자원은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자였습니다.

개발자 한 명을 채용하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은 매우 비쌌습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최우선 과제는 “채용”과 “유지” 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니지먼트의 역할이 재정의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기술적 판단을 내리고 업무를 지시했다면, 팀원이 떠나지 않게 멘탈을 케어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커리어 성장을 돕는 리더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시기 실리콘밸리에서는 “매니저는 코드를 짜지 말라”는 조언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매니저가 코드를 짜면 팀원들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대신 매니저는 one on one, 팀 빌딩, 채용 인터뷰, 문화 조성 등 “비기술적 업무”에 몰두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선진적인 실리콘밸리 문화”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윌 라슨은 “그것은 인간적인 경영이어서가 아니라, 돈이 너무 많아서 비효율을 감당할 수 있었던 시기의 사치스러운 최적화였다.” 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효율성의 역습과 관리자의 위기

2022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가 오르며 “공짜 돈”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자본 조달 비용이 비싸지자 투자자들의 질문이 변경되었습니다. “다음에 얼마나 성장해?”, “지금 얼마나 벌고 있어?” 이런 상황의 변화는 기업 내부의 “비효율”을 정조준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해고가 시작되면서 개발자 공급 부족 현상이 완화되었습니다. 회사는 더 이상 개발자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무조건적인 유지”가 내려오자, “사람만 관리하는 매니저”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메타는 “매니저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필요 없다.”고 선포하고 관리자 층을 대폭 없앴습니다. 보고 라인이 길어질수록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정보는 왜곡됩니다. 무엇보다 “직접 제품을 만들지 않는 계층”이 너무 비대해졌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윌 라슨은 이 현상을 보며 “순수한 피플 매니지먼트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합니다. 기술을 모르고, 제품에 직접 기여하지 않으면서, 프로세스와 사람만 관리하는 역할은 이제 회사에 짐이 될 뿐입니다.


좋은 매니지먼트는 왜 유행 취급을 받는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윌 라슨의 주장은 “직원을 막 대해도 된다”거나 “복지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은 “비즈니스 임팩트와의 괴리”입니다.

지난 10년간 매니지먼트는 지나치게 추상화되었습니다. 많은 리더들이 다음과 같은 업무를 자신의 주업무로 여겼습니다.

  • 심리적 안정감 조성
  • 팀원 간의 관계 조율
  • 복잡한 채용 프로세스 설계
  • 추상적인 커리어 코칭

위에 언급한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회사가 위기일 때, 이런 업무들은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어?”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합니다. 성과와 무관한 “좋은 분위기 조성”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리더들이 “피플 매니지먼트”를 핑계로 기술 학습을 멈췄습니다. “나는 리더니까 코드는 몰라도 돼. 팀원들이 전문가니까” 이런 태도는 저금리 시대에는 “위임”이라는 미덕으로 포장되었지만, 지금은 “직무 유기”로 간주됩니다. 기술적인 난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고, 결국 팀의 속도를 늦추는 병목이 됩니다.


다시 “테크니컬 리더”의 시대로

2024년 이후, 살아남는 리더와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요? 미래의 모델은 과거의 모델과 닮아 있습니다.

이제 리더도 다시 엔지니어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팀원들의 코드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기술적 부채를 관리하며 아키텍처 설계가 가능해야 합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수 겸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Airbnb의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도 “리더들이 다시 실무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팀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 얼마나 문화를 잘 지켰는가는 이제 2순위입니다. 1순위는 우리가 만든 제품이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했는가입니다. 팀원의 성장은 리더가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다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팀장 위에 A, A위에 B라는 옥상옥 구조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리더 한 명이 관리하는 인원은 늘어나되, 조직의 깊이는 얕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정보 전달의 왜곡을 줄이고, 실무자와 의사결정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함입니다.


결론

이 거대한 흐름은 태평양 건너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도 이미 “효율화”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경영진 분들은 가짜 일을 걷어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실리콘밸리식 수평 문화나 복지 중심의 관리를 맹목적으로 좇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회사의 관리자들이 실무와 연계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팀 케어보다 기술적 리더십과 비즈니스 기여를 요구해야 합니다. 또한 조직을 얕게 만들어 리더들이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해야 합니다.

리더들은 기술적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는 사람 관리가 전문이야”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기술을 봐야 하고, 제품의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거 아세요? 팀원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 팀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성과로 증명하여 그들의 월급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엔지니어분들은 비즈니스를 이해해야 합니다. 좋은 리더란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장애물을 치워주는 사람”입니다. 리더에게 정서적 케어를 요구하기 보다는 “비즈니스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요구하세요. 그리고 기술적 우아함보다 비즈니스 가치를 먼저 생각하세요. 스스로의 가치를 “코드 퀄리티”가 아닌 “문제 해결 능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좋은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가 유행했다는 말은 “거품 낀 관리”가 유행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좋은 관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정의가 “사람 좋은 리더”에서 “유능한 리더”로 무게중심이 이동했을 뿐입니다.

지금 당신의 조직은, 그리고 당신은 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요?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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